논술 전형에서 수능 최저를 충족하지 못해 탈락하는 수험생 비율이 매년 30~40%에 달합니다(출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저도 고3 여름방학에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지나쳤다가, 나중에서야 그게 얼마나 무거운 경고였는지 깨달았습니다.

논술 전형, 도피인가 기회인가
"논술은 복권이니까 시간 낭비다"라고 단정 짓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말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만 봐도 친구 한 명은 논술 학원까지 다니며 준비해서 실제로 원하는 대학에 붙었고, 또 다른 친구는 수능 준비도 흔들리면서 논술만 붙잡다가 둘 다 놓쳤습니다. 결국 같은 전형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논술 전형의 본질은 추론 역량 평가입니다. 여기서 추론 역량이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제시문 안에서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제가 처음 기출문제를 풀었을 때, 그냥 제 생각을 풀어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담당 선생님께 첨삭을 받고 나서야 "논술은 네 생각을 쓰는 게 아니라 제시문 안에서 논리를 뽑아내는 것"이라는 말이 비로소 머리에 박혔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이후 준비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2027학년도 논술 전형은 전체 모집 인원이 약 152명 증가합니다. 폐지되는 학교가 있는 반면, 가천대·홍익대·고려대 세종·덕성여대 등이 인원을 늘렸습니다. 특히 중앙대는 기존 일반형 외에 수능 최저 없이 고3 현역만 지원 가능한 논술 창의형을 신설하고, 두 전형의 중복 지원까지 허용했습니다. 이건 솔직히 꽤 파격적인 발표였습니다.
수능 최저, 이걸 모르면 논술 준비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란, 논술 점수와 별개로 수능 등급 합산 기준을 충족해야만 최종 합격이 가능한 조건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논술을 아무리 잘 써도 수능 최저를 못 넘으면 서류함에서 끝납니다. 제가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기도 합니다. 논술 준비에 시간을 쏟다 보니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흔들렸고, 그때 처음으로 "최저 못 맞추면 이 준비가 다 의미 없어지는구나"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능 최저가 다 비슷할 거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학교마다 편차가 상당합니다. 2027학년도 기준으로 주요 대학을 그룹별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A그룹 (최상위): 고려대 3합 8, 성균관대 3합 6 또는 3개 영역 최저, 서강대·한양대 3합 7, 중앙대 3합 6
- B그룹 (상위): 한국외대 2합 4, 이화여대·경희대·건국대·동국대·홍익대·숙명여대 2합 5
- C그룹 (중상위): 숭실대·국민대·항공대·고려대 세종·동덕여대·성신여대 등 2합 6
- D그룹 (중위): 가천대·삼육대·한양대 에리카·홍익대 세종 — 1개 영역 3등급
이 그룹 구조를 보면 그냥 "수능 열심히 해라"는 말로는 전략이 안 세워집니다. 제가 현실적으로 어느 그룹을 노릴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거기서 역산해서 수능 목표 등급을 잡아야 구체적인 그림이 나옵니다. 목표 없이 논술부터 시작하면 나중에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대학별 논술 유형, 학교마다 완전히 다릅니다
수리 논술의 경우, 상위 15개 대학 중 성균관대와 숙명여대를 제외한 13개 대학이 수학1·2·미적분·기하·확률과 통계까지 전 범위를 출제합니다. 여기서 수리 논술이란 단순 계산이 아니라 수학적 개념을 활용해 풀이 과정과 논리를 서술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수능 수학과는 풀이를 서술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진도가 다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수리 논술부터 시작하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인문 논술의 경우도 대학마다 유형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기출 문제를 여러 학교 것을 풀어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연세대와 고려대 사이의 접근법이었습니다. 연세대는 하나의 주제를 다면적 사고(multi-perspective analysis)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다면적 사고란 동일한 주제를 자유 의지, 결정론, 감정, 이성 등 여러 관점에서 교차 분석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풀면 풀수록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같은 라인으로 서강대·한양대·숙명여대와 함께 묶어 연습하면 효율이 높아집니다.
반면 고려대는 문제 해결형과 비판 평가형에 집중합니다. 비판 평가형이란 제시문 속 주장의 논리적 결함을 찾아 반박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으로, 성균관대·중앙대·경희대도 유사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원 학교를 먼저 좁혀놓고 그 학교의 기출에 집중하는 게, 모든 학교 유형을 넓게 훑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명확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논술과 수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현실적인 전략
일반적으로 논술 준비는 별도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 "별도 시간"이 수능을 직접적으로 잠식합니다. 저도 초반에 논술 한 문제 제대로 쓰는 데 두 시간이 기본이었고, 첨삭받고 수정하다 보면 반나절이 넘었습니다. 그러다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멘털이 흔들렸습니다. 결국 논술에 쓰는 시간을 주 이틀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수능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균형이 잡힌 건 그 이후였습니다.
2027학년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논술 전형 경쟁률은 일부 학과에서 100:1을 넘기도 했습니다(출처: 대학어디가). 이런 수치를 보면 "논술은 복권"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수능 최저가 실질 경쟁률을 절반 이하로 낮춰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최저를 안정적으로 충족할 수 있다면 확률은 생각보다 높아집니다. 그 전제가 결국 수능입니다.
메디컬 계열을 보면 경희대·연세대 의치대 등이 논술을 폐지했고, 가천대 한의학과가 7명, 약학과가 6명 신설됐습니다. 의대를 노리는 수험생이라면 이 변화를 체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한국외국어대학교·가톨릭대는 내신을 반영하지 않고 논술 100%로 선발하는 체제로 전환했는데, 이는 내신이 낮은 학생에게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논술을 시작하기 전에 정해야 할 건 지원 대학 그룹, 해당 그룹의 수능 최저 기준, 그리고 그 최저를 위한 수능 목표 등급입니다. 이 세 가지 없이 논술 기출부터 푸는 건, 목적지 없이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논술이 실질적인 기회가 되려면 수능이 먼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순서를 처음에 헷갈렸다가 조정하면서 균형을 찾았습니다. 지원 학교 그룹을 먼저 정하고, 수능 목표 등급을 역산한 뒤, 논술 준비 시간을 그 나머지에서 배분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논술은 수능을 열심히 하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추가 기회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입시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대입 전형은 매년 변경될 수 있으므로, 각 대학 입학처 공식 발표를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